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7인의 사무라이 (문단 편집) == 기타 == * 엄청난 제작비와 가혹한 제작 과정으로 유명하다. 먼저 제작비는 1억 2500만 엔으로 인플레이션을 계산해보면 현재 가치로 약 7억 6000만 엔(약 100억)이라는 거금이 나오는데, 이는 1950년대 일본 영화계의 평균적인 제작비인 2600만 엔의 5배 정도이다.[*출처 [[https://www.bfi.org.uk/news-opinion/news-bfi/features/still-crazy-good-60-years-seven-samurai|BFI: Still crazy-good after 60 years: Seven Samurai]]] 21세기 들어서 제작비 인플레가 심해진 탓에 별로 많지 않아 보이지만, 1990년대 한국 영화계의 거장이라 불리던 정지영 [[감독]]의 대작 [[남부군]], [[하얀전쟁(영화)|하얀전쟁]] 두 편의 제작비를 모두 합쳐도 34억원[* 남부군은 1989년 당시 14억원을 들여 만들었는데, 당시 한국영화의 평균 제작비는 약 2~3억원 정도였다.]이었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해도 6억 정도가 모자란 94억이다. 이렇게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된 이유로는 271일에 달하는 긴 촬영 기간과 세트 비용, 잦은 로케이션과 로케이션 장소를 위한 세트 비용 그리고 클라이맥스 장면인 마을 방어전 촬영을 위한 카메라 8대 동시 동원이 있었다고 한다. 때문에 제작자들과 구로사와 사이의 다툼이 잦았는데, 그 다툼은 구로사와가 '전투 장면을 추가 촬영해야겠다'며 제작비를 또 요청하자 제작자들이 몰려와 '''"영화계에서 매장되고 싶지 않으면 작작하라"'''는 경고를 했고, 결국 구로사와가 영화를 마무리하는 것으로 끝났다. * 일본에서 약 2억 6000만 엔을 벌었다. 극장과의 수익 배분을 감안하면 박스오피스 흥행으로는 그다지 돈을 못 벌었는데 다행히 2차 시장 및 판권비로 적잖은 수익을 올렸다고 한다. * 7인의 사무라이의 초기 구상은 어느 하급 무사의 평범한 하루를 그린 [[일상물]]이였다고 한다. 구로사와 감독과 공동각본을 쓴 하시모토 마나부는 사무라이가 출근해 동료와 도시락을 나눠 먹고 퇴근할 무렵 벌어진 헤프닝으로 할복을 하는 이야기를 구상했다. 그런데, 아무리 조사해도 사무라이가 도시락을 먹었는지를 기록해놓은 것이 없었다. 하루 세끼 먹는 관습이 언제부터였는지 조사하기에 이르렀는데, 영화사 조사부의 열성적인 취재에도 사무라이의 도시락을 실증할 수 없었다. 결국 한참 진행된 각본 집필 과정이 불가능함을 깨달은 하시모토는 구로사와를 찾아가 사실을 이야기한다. 구로사와는 분개했지만 이를 받아들인다. 이후에 구상한 게 '사무라이 열전' 이었다. 유명 사무라이들의 일화를 토대로 옴니버스 형식의 시리즈물로 집필했는데, 하시모토의 각본 초고를 본 구로사와는 '기승전결이 없다'는 이유로 영화화가 어렵다는 지적을 한다. 이후 '가난한 사무라이가 훈련을 하기 위해서 돈이 필요했을 텐데, 어떻게 돈을 충당했을까'라는 질문이 떠올랐고 이에 대한 답을 찾던 중 '농민들이 사무라이를 고용해 도적들을 퇴치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 모티브에 앞서 조사한 사무라이들의 일화를 버무려 만든 각본이 7인의 사무라이가 된다. 하시모토 마나부의 책 <복안의 영상 - 나와 구로사와 아키라>[* 원제는 <複眼の映像 - 私と黑澤明> 여러 사람의 눈으로 본다고 해서 '복안([[複]]겹칠 복, [[眼]]안구 안)'이다. 구로사와 감독처럼 각본을 공동집필하는 [[박찬욱]] 감독이 추천하는 책이다. 참고로 박찬욱 감독의 공동집필은 [[https://www.nocutnews.co.kr/news/5840124|대부분 실시간으로 공동집필]]하는 것으로 구로사와 시절 서로가 서로에게 피드백을 하며 하던 공동집필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에 각본 집필 과정이 자세히 나온다. * 영화가 공개되고 나서 [[자위대]]에서 찾아와 영화에 나오는 군사 작전을 어디서 배웠느냐 물었다고 한다. 이에 구로사와는 '어디서 배운게 아니라, 상식적으로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 해서 지어낸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자위대원이 '미군 군사 작전 프로그램과 똑같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 최후반의 비 내리는 장면은 '[[서부극]]은 날씨가 맨날 맑다. 이 영화는 그것과는 다른 특유의 맛을 가지고자 한다.'는 구로사와 감독의 기획 아래 실제로 비가 내리는 날 강행군으로 찍은 장면이라고 한다. 의외로 현장 분위기는 배우, 제작진 모두 다 활기찼으며 아무도 감기에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여담으로 비에 먹물을 뿌려 날리는 방식으로 보다 격한 호우를 표현했다고 한다.[* 비에 먹물을 날리는 기법은 구로사와 감독이 <[[라쇼몽]]>에서 처음 만든 기법이다. 라쇼몽 자체가 흑백이라 비가 잘 보여야했던지라 고육지책으로 한 것이었지만 해놓고 보니 꽤 마음에 들었는지, 이 기술은 이후로도 감독의 작품에서 자주 사용된다.] * 키쿠치요가 훔친 가계도에 적힌 출생연도와 작중 나오는 대사를 토대로 계산해보면 본작의 배경년도는 1586년이다. 일부 영어 자막에는 종종 1587년으로 나오는데 이는 당시 일본의 나이 계산법에 대한 서양의 무지 때문으로 추측된다.[* 현재 일본에서는 생일로 나이를 따지는 만 나이를 채택하고 있지만, 이는 메이지 유신 이후에 바꾼 것이고 그 이전까지는 한국식 나이와 동일하게 나이를 따졌다.]현재 한국에서 통용되고 있는 나이 계산법으로는 생일이 지났느냐에 따라 1586년이 될 수도 있고 1587년이 될 수도 있지만, 어디서 훔쳐왔는지 모를 무사의 가계부 상의 키쿠치요의 생일이 텐쇼 2년 (음력) 2월 17일. 영화에서 계절은 보리가 익을 무렵인 가을이므로 생일이 지났다고 보면, 1586년으로 판단하는 것이 합당하다. * [[스탠리 큐브릭]]이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다. [[https://www2.bfi.org.uk/news-opinion/sight-sound-magazine/polls-surveys/stanley-kubrick-cinephile|#]] * 일본에서 해외 영화가 개봉할 때 간혹 제목이 ○人の○○○같은 식[* ex. [[철십자 훈장(영화)|17인의 푸로펫쇼날]].]으로 개명되는 것도 이 영화의 영향으로 보인다. *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명작으로 추앙받는 작품이기에 거의 모든 영상 매체로 발매되었다. 그러나 원본 필름(네거티브 필름)이 관리 소흘로 인해 훼손되어 저화질로 보아야 했으나, [[크라이테리온 콜렉션]]에서 복원 작업을 성공해내었고, 4K로 리마스터까지 진행하였다. [[http://www.blu-ray.com/movies/Seven-Samurai-Blu-ray/7737/|참조(영문)]]. * 일본에서는 본 영화의 제작사이자 배급업체인 [[도호]]의 주도로 BD를 발매하였는데 원래 1채널 모노였던 영화 음성을 5.1 채널로 가상 분할시켜 넣었다고 한다. 이런점에서는 고평가 받으나, 화질 면에서는 크라이테리온에서 발매한 복원판에 비해 밀린다고 평해진다. * 한국의 경우 BD 발매는 커녕 DVD도 겨우 나왔는데 그 수준이 실로 처참해 울며 겨자먹기로 일본판이나 미국판을 사야했다. 그러나 [[다일리 컴퍼니]]에서 블루레이 정발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